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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더 서러운 독거노인, 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외로움 삭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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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재협
댓글 0건 조회 16,205회 작성일 07-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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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일원동 666번지. 부자 동네로 소문난 강남이지만 이곳에도 외롭고 힘들게 겨울을 나고 있는 독거노인이 있다.

주위로는 우리나라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이고 비교적 잘 정돈된 주택가 골목 한켠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김순옥(79) 할머니를 만났다.

김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누군가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맞는 손님을 마중하러 방문 문턱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찾느라 고생했어. 근데 늙은이한테 무슨 볼 일이 있다고 날도 추운데 찾아왔어."

할머니가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지하 단칸방은 생각보다 좁지 않았고, 할머니 혼자 지낸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휑한 느낌이 들었다. 방안에 들어선 김 할머니는 방바닥 여기저기를 짚어보더니 그래도 가장 따뜻한 자리라며 기자를 앉혔다.

"이렇게 살아. 그래도 겨울에 찬바람 들어차지 않으니까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김 할머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반가우면서도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민망했는지 이부자리를 다시 매만지며 말했다.

김 할머니는 관절염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못한다.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 TV를 보거나 이따금씩 바람을 쐬기 위해 문턱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다.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누워 지내는 김 할머니의 이불자리 곁에는 낡은 앨범과 TV리모콘이 나란히 놓여있다.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이렇게 만날 누워 테레비나 봐. 이게 내 친구고 말동무야."

TV가 지루할 땐 앨범을 보며 옛 기억을 되짚어본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것도 싫어 앨범을 펼쳐 본지도 오래됐단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늘 곱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고 있어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버린 지금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 좋은데 구경도 많이 하러 다니고 그랬는데..." 김 할머니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여 있었다. 좋은 시절을 생각하니 지금 처지가 더욱 초라하게 느껴져 옛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단다.

5남매를 둔 김 할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어렵게 자식들을 키웠다. 셋째와 넷째 남매를 병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지만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신발 공장을 하며 일찍 자수성가해 고생도 일찍 접었다.

그러나 잘 되던 공장이 IMF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3년 전에는 부도가 나는 바람에 결국 문을 닫았다. 빚 갚느라 성북구 장이동의 집도 팔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다시피 이곳으로 왔다. 그때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집을 나가 지금까지 연락도 닿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홀로 남겨진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슷한 시기 교통사고까지 당해 그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불편하다. 한 동안은 연락도 오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아 정부보조금도 탈 수 없었다.

이런 김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해줘 매달 35만~40만원 정도를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월세 20만원과 생활·병원비를 감당하기도 빠듯하다.

일주일에 한번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살펴보고 가는 것을 빼고는 찾아주는 이조차 없다. 주인집 말고는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다.

"죽을 날만 바라보고 사는 노인네가 친구는 사귀어서 뭐해.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맘 편해."

애써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지만 김 할머니의 표정에는 외로움이 가득하다. 자식들도 손자도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새해에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묻자 "소원이 뭐가 있겠어. 그냥 조용히 죽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야" 추운 겨울이 더욱 서러운 김 할머니는 어두운 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외로움을 삭힌다.

<뉴시스 200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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