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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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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재협
댓글 0건 조회 17,249회 작성일 07-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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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편지"


차츰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에겐 근심도 그만큼 많아졌다.
노인을 모시고 섬기는 일 자체를 힘겨워하는 단체나 가정들도 더 많아졌다.
끝까지 사랑과 정성을 다하려는 우리의 노력에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때로 생각없이 던지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말로써 &오래 사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한 건망증으로 종종 정신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완전한 치매환자는 아닌 노인들이 존경은커녕 인격을 비하하는 막말을 들을 적엔 얼마나 서운할까?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딸들의 입을 통해서 그런 말을 들을 땐 겉으론 내색도 못하고 아마 속으로만 울 것이다.
안 그래도 &오래 살아&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는 그에게 은근히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듯한 말이 들려올 땐 얼마나 비참한 심정이 될까.
어느 날 이분들의 입장이 되어 시를 적어보았기에 소개하려 한다.
늙음 자체만으로도 힘겹고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노인들을 향한 우리의 맘씨와 말씨가 좀 더 유순하고 친절해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그리고 나를 돌보아주는/친절한 친구들이시어/나를 마다 않고 살펴주는 그 정성/나는 늘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대들이 나를/자꾸만 치매노인 취급하며/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교육시키려 할 적마다
마음 한 구석에선/꼭 그런 것은 아닌데-/그냥 조금 기억력이 떨어지고-/정신이 없어진 것 뿐인데-/하고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오
제발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나를 갓난 아기 취급하는/언행은 좀 안 했으면 합니다
아직은 귀가 밝아 다 듣고 있는데/공적으로 망신을 줄 적엔/정말 울고 싶답니다
그리고 물론/악의 없는 질문임을 나도 알지만/생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 없는지
은근 슬쩍 떠보는 듯한 그런 질문은/되도록이면 삼가 주면 좋겠구려. 어려운 시험을 당하는 것 같아/내 맘이 편칠 않으니-
어차피 때가 되면/생을 마감하고 떠나갈 나에게
떠날 준비는 되어 있느냐/아직도 살고 싶으냐
빙빙 돌려 물어 본다면/내가 무어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더 살고 싶다고 하면/욕심 많은 늙은이라 할 테고
어서 죽고 싶다면/우울하고 궁상맞은 푸념쟁이라 할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나의 숨은 비애를/살짝 감추고 사는 지혜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여/내가 가끔은 그대들이 원치 않는 이기적인 추한 모습/생에 집착하는 모습 보일지라도/조금은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지요 하늘이 준/복과 수를 다 누리라 축원하고/오래 살라 덕담하면 좋다고 고맙다고/겉으로는 웃으며 대답하지만/속으로는 나도 이미/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평온한 죽음을 맞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고/오늘은 내 입으로/꼭 한 번 말하고 싶었다오
그러니 부디 지상에서의/나의 떠남을 너무 재촉하지는 말고/좀 더 기다려 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나를 짐이 아닌 축복으로/여겨 달란 말은 강조하지 않을 테니 모든 것을 시간 속의 섭리에 맡겨 두고/조금 더 인내해 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뜻으로라도/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어설픈 편지라도 쓸 수 있으니/쓸쓸한 중에도 행복하네요
어쨌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내 처지에/오늘도 미안한 마음 감출 수가 없지만
아직은 이렇게 살아있음이/그래도 행복해서/가만히 혼자 웃어봅니다 이 웃음을 또/치매? 라고 하진 않을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살짝 웃어봅니다&

<한국실버산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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